서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 플랫폼이 일상이 된 오늘날, 인플루언서는 더 이상 성인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이제는 어린아이들조차 수백만의 팔로워를 가진 스타가 되어 광고를 찍고, 브이로그를 올리며,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을 우리는 ‘키드플루언서(Kidfluencer)’라고 부른다. 겉보기에는 귀엽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며 행복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의 욕망, 법의 사각지대, 그리고 아동 인권 문제라는 심각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ad Influence: The Dark Side of Kidfluencing》는 바로 이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며, SNS 시대의 새로운 아동 착취 형태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돈벌이 수단이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희생되었는지를 따라가는 이 작품은 단순한 고발을 넘어, 우리 사회가 돌아봐야 할 윤리적 책임을 묻는다.
1. 귀여움 뒤에 숨겨진 상업적 착취
키드플루언서 콘텐츠는 주로 일상 브이로그, 장난감 리뷰, 가족 게임 영상 등으로 구성되며, 대체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Bad Influence》는 이 영상들이 철저히 기획되고 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많은 경우, 아이들은 장시간 촬영에 노출되며, 부모는 더 많은 조회수를 위해 과도하게 연출하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몇몇 부모들이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수준으로 영상을 제작하거나, 훈육 장면을 콘텐츠화해 비난을 받았던 사례를 조명한다. 아이의 ‘귀여움’은 조회수와 광고 수익으로 환산되고, 이는 곧 부모의 생계 혹은 명예와 직결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은 정작 자신의 의사 표현도, 거절의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이용당하고 있다.
2. 법의 사각지대,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
놀라운 사실은, 현재 많은 국가에서 키드플루언서를 위한 법적 보호 장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아역 배우나 모델과 달리, SNS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아동은 대부분 ‘가정 내 콘텐츠 제작자’라는 이유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실제 키드플루언서 가족의 인터뷰와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이 사각지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최근 들어 키드플루언서의 수익 일부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움직임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부모의 통제 아래 있다. 수천만 원의 광고 계약, 굿즈 판매, 브랜드 협업 등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지만, 아이에게 돌아가는 몫은 불투명하거나 전무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아이는 단순한 ‘SNS 스타’가 아니라, 노동의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디지털 시대의 아동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3. 아이의 삶인가, 부모의 야망인가
《Bad Influence》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활동은 아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부모의 욕망을 투영한 결과인가?"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원해서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아이의 인기와 수익 구조를 인식한 뒤 더욱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영상 속에서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일부 키드플루언서는 성장하면서 사생활 침해, 정체성 혼란, 학업 단절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고백한다. 아이가 콘텐츠 속 캐릭터로 살아야 할 때, 실제 삶은 철저히 조작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으며,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귀엽고 재미있는 영상’의 이면에 얼마나 복잡한 감정과 상처가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SNS 속 좋아요와 조회수의 이면에, 진짜 아동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 귀여움이라는 상품, 우리가 외면한 책임
《Bad Influence: The Dark Side of Kidfluencing》는 지금까지 대중이 쉽게 간과해왔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다큐멘터리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시청자에게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 영상을 소비하며 어떤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는가?”
이제는 단순히 ‘귀엽다’, ‘재밌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들의 콘텐츠를 소비하기 전에,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플랫폼 차원의 기준을 강화하며, 무엇보다 부모와 사회 전체가 아이의 인권과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Bad Influence》는 그런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자, 우리 모두의 성찰을 유도하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