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Okja)*는 단순한 환경 영화나 동물 보호 영화로 보기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깊다. 2017년 칸 영화제에서 넷플릭스 배급작으로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한국과 미국, 도시와 자연, 과학과 감성, 그리고 자본과 생명의 대립을 다룬 이 작품은 그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독특한 장르적 혼합체이자 감성적 파괴력을 지닌 영화다.
이야기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와 그녀가 키우는 유전자 조작 슈퍼돼지 ‘옥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처음엔 동화 같은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는 생명윤리, 글로벌 자본주의, 소비주의 사회의 폭력성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며 점점 더 어두운 현실을 드러낸다. 봉준호 감독은 특유의 유머와 위트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강력하게 담아내는 연출로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붙든다.
무엇보다 옥자가 특별한 이유는, 거대한 스케일과 다국적 캐스팅, 블록버스터적 요소 속에서도 ‘한 명의 소녀가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운다’는 감정적 서사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 사회의 이면을 직시하게 만드는 통찰을 제공하며, 우리 모두에게 ‘지금 무엇을 먹고,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묻게 만든다.
미자와 옥자, 생명과 우정의 순수한 연대
옥자의 가장 큰 힘은 주인공 미자와 옥자 사이의 순수한 유대 관계다. 영화 초반, 두 존재가 함께 숲을 달리고,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사소한 소통과 장난을 나누는 장면들은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 둘의 관계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우정이라는 감정적 테마를 넘어, 언어를 초월한 이해와 동행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옥자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미자의 가족이자 친구, 그리고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이러한 연대는 단순한 정서적 끈을 넘어,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영화는 옥자를 단지 ‘동물’로 소비하거나 구분짓지 않는다. 옥자는 분명히 인간과는 다르지만,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교류하며,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생명체로 묘사된다. 미자는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으며, 그녀의 순수한 사랑은 어떤 논리나 정치적 입장보다 강한 윤리적 직관으로 다가온다.
또한 미자가 옥자를 되찾기 위해 서울을 거쳐 뉴욕까지 가는 여정은, 자본과 권력,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동물 해방 전선(ALF)과 연대하거나, 다국적 기업의 홍보 쇼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다. 옥자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 이 단순하고도 순수한 목표는 영화의 핵심 동력이 되며, 끝까지 관객을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옥자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극이다. 영화 속 다국적 기업 ‘미란도’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더 효율적이고 맛있는 고기’를 생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동물 학대, 생명 경시, 이윤 추구를 위한 포장된 이미지 전략이 숨어 있다. 이는 현실 속 식품 산업, 생명공학 기업, 그리고 대중 소비문화의 모습과 놀라우리만큼 닮아 있다.
특히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루시 미란도는 ‘친환경’과 ‘윤리적 소비’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이미지 세탁과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점을 통해, 기업의 위선과 조작을 고발한다. 그녀의 캐릭터는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착한 척’을 하며 본질을 숨기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녀의 이중성과 분열된 정체성은, 기업이 이윤과 도덕성 사이에서 얼마나 쉽게 윤리를 포기하는지를 드러낸다.
영화는 또 다른 시선으로, 소비자인 대중의 책임도 묻는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고기 한 조각 뒤에는 어떤 고통이 있는가? 슈퍼마켓에 진열된 제품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 옥자는 이러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지만, 옥자가 도축장의 벨트 위에 오를 때, 그리고 미자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 관객은 침묵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 이 점에서 옥자는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 그 이상으로, 소비 사회의 본질에 대한 깊은 자각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다국적 공동체와 문화의 교차점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로, 한국과 미국, 다국적 배우들이 함께하는 독특한 제작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단지 배경의 확장을 넘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생명과 환경, 소비와 윤리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이슈라는 점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미자의 고요하고 자연적인 삶은 뉴욕이라는 대도시,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번잡한 마케팅 쇼와 극명하게 대비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철학의 차이로까지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은 어느 쪽도 완벽하게 이상화하지 않는다. ALF조차도 이상주의와 현실 사이에서 도덕적 모순에 직면하며, 옥자를 도우려 하지만 그 방법이 늘 정당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한국적인 정서와 풍경, 미국식 시스템과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등장하면서, 영화는 글로벌 시장을 위한 제작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개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언어, 풍경, 감정, 메시지 모두가 다층적으로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통일된 주제를 향해 정교하게 전진한다. 이러한 복합성은 옥자를 단순한 블록버스터와 구별되게 만드는 요소이며, 세계 어느 관객이 보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과, 봉준호 감독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이 결합된 결과다.
결론
옥자는 단순한 감동 스토리를 넘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미자와 옥자의 우정을 중심으로 생명에 대한 연민을 그리는 동시에, 영화는 자본주의, 소비문화, 생명 윤리, 그리고 사회적 위선이라는 복잡한 주제들을 탁월하게 녹여낸다.
봉준호 감독은 이를 유머와 슬픔, 스펙터클과 리얼리즘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연출하며,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사회적 현실을 통찰하게 만든다. 이는 단지 눈물만을 유도하는 감성 영화가 아닌, 관객이 자신의 소비 습관과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예술 작품이다.
옥자는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있으며,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리고 “한 생명과의 우정은 시스템을 넘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으며,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과 인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