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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 초자연과 현실 사이, 신의 심판을 둘러싼 인간의 민낯.(서론, 새진리회, 개인과 대중의 심리, 윤리적 질문, 결론)

by ideas9831 2025. 6. 8.

서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단순한 판타지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신의 심판’이라는 초자연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믿음과 두려움, 도덕성과 권력의 메커니즘까지 날카롭게 파헤치는 사회적 우화다.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의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공개 직후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순위 상위권을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1화부터 펼쳐지는 충격적인 장면—지옥의 사자들이 한 남성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오프닝 시퀀스는—시청자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지옥은 인간이 예고 없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다는 설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누구나 예외 없이 “당신은 언제 몇 시에 지옥에 갑니다”라는 예언을 받고, 그 시간에 맞춰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지옥형을 집행한다. 이 미지의 존재 앞에서 사회는 극단적으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그 현상을 이해하거나 피하려 하기보다는 ‘정의’나 ‘신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든다. 그 중심에는 신흥 종교 단체 ‘새진리회’가 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초자연적 공포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구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윤리적 혼란, 그리고 신앙과 공포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지옥은 우리가 과연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머릿속을 맴돌게 만든다.

신의 심판인가, 사회적 폭력인가 – ‘새진리회’의 등장

드라마 지옥의 중심축에는 ‘새진리회’라는 종교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지옥행 고지를 받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규정하며, 이들의 죽음을 ‘신의 정의로운 심판’이라고 선전한다. 대중은 이들의 주장에 점점 동조하게 되고, 곧 새진리회는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강압과 폭력, 허위와 선동이 교묘하게 얽혀 있으며, 이는 현실의 종교 단체나 권위주의 조직을 떠올리게 만든다.

새진리회의 교주 정진수는 신의 뜻을 대변한다며 사람들을 향한 공포를 조장한다. 그의 연설은 논리적이며 카리스마 넘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사생활, 존엄성을 짓밟는 논리가 숨어 있다. ‘죄지은 자는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이분법 아래,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여유도 없이 타인의 고통을 ‘정의’로 포장하며 소비하게 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군중 심리'와 '정의의 왜곡'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단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화살촉’이라는 극단주의자 집단에 의해 실시간 생중계로 폭행당하거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사회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감시와 비난의 도가니로 변해간다. 지옥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리고 집단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조명하며, 신념과 진실 사이의 균열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공포는 누구의 것인가 – 개인과 대중의 심리

지옥은 ‘초자연적 존재의 심판’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공포’를 건드린다. 그리고 이 공포는 단순히 지옥행이라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시선’, ‘사회적 낙인’, ‘살아남기 위한 침묵’ 같은 일상 속 공포로부터 비롯된다. 드라마는 각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정진수를 쫓는 방송국 PD 배영재와 변호사 민혜진은 새진리회의 논리를 파헤치며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점점 커지는 사회적 압박과 개인적 위협 속에서 좌절하고, 결국 자신들이 믿고 있던 ‘정의’마저 흔들리게 된다. 특히 민혜진은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분노하면서도, 눈앞의 현실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 감정의 혼란은, 오늘날 우리 각자가 느끼는 사회적 피로감과 무기력함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는 이처럼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대중이 집단으로 움직일 때 얼마나 쉽게 타인을 악마로 만들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이고, 또 누군가는 그 목소리에 편승하며 군중 속에 숨어든다. 지옥은 공포를 외부로부터 주입된 위협이 아닌, 인간 내부에서 비롯된 감정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질문

지옥이 특별한 이유는,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키면서도 끝까지 그 존재의 ‘정체’를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지옥의 사자들은 누구의 명령도, 감정도 없이 임무만을 수행할 뿐이다. 이는 ‘신의 심판’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 속 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즉, 중요한 것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를 둘러싼 인간의 해석과 반응이라는 점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현실을 왜곡하고, 그 왜곡된 진실을 근거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회차에서 갓난아기에게 지옥행 선고가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기존의 ‘신의 뜻’이라는 논리가 무너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새진리회의 권위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계기가 된다. 이 장면은 단순히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신념의 허약함과, 그것을 정당화해온 시스템의 허상을 고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결국 지옥은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라, 그 힘을 믿는 인간의 선택과 태도, 그리고 사회 구조가 진짜 공포의 근원임을 말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괴물이나 신적 존재가 아닌, ‘정의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심판하는 인간들’을 지옥의 진정한 주체로 제시하며, 윤리와 신념, 책임과 자유 사이의 균형을 묻는 진지한 철학적 질문을 남긴다.

결론

지옥은 단순히 흥미로운 설정의 판타지 드라마를 넘어,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신의 심판이라는 초자연적 장치를 통해 드러나는 사회적 구조, 인간의 심리, 종교의 권력화, 그리고 도덕의 위선은 단순한 공포나 스릴을 넘어서 깊은 철학적 사유를 가능케 한다.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두려움에 휘둘리고, 누군가의 목소리에 기대어 책임을 전가하는지를 보여주며, 진짜 ‘지옥’은 외부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는 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의지임을 강조한다.

지옥은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믿고,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이 사회는 과연 ‘정의’라는 이름 아래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관객의 내면에 오랫동안 남는다.